Arthur Benjamin's formula for changing math education
확률가 통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 뿐 아니라 제대로 가르치기만 한다면, 내용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왜냐하면, 확률과 통계 자체가 게임과 도박에 대한 수학이기 때문이죠. 트렌드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온 세상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우리 수학 교과과정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뀔 때에요. 전통적인 연속함수를 다루던 수학에서 탈피해서 현대적인 이산수학에 대한 내용을 더 가르쳐야 합니다. 불확실성과 무작위성, 그리고 데이터에 대한 수학이 바로 확률과 통계라는 것이지요.
잠깐, Khan Academy 을 운영하고 있는 Khan이 Good Experience Live 2010에서 강연한 동영상도 같이 링크합니다. 빌게이츠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이 사이트에 가서 강연을 보라고 추천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이트도 오픈 번역 프로젝트로 진행하면 좋을듯 하네요. ^^.
질문과 함께 시작을 하겠어요. 마지막으로 어린아이처럼 유치하다고
들은 적은 언제인가요? 저와 같은 어린아이는 유치하다고 듣는 것은 매번 있는 일이에요. 저희가 비합리적인 것들을 요구 하거나 무책임한 행동을 보이거나 또는 평범한 미국 시민으로서의 어떤 다른 기색을
보이면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유치하다는 소리를 듣게되요. 이말은 제게 정말 신경쓰여요. 결국은 말이죠, 이런 사건들을 조사해보세요. 제국주의와 식민지화 세계 전쟁, 죠지 W 부시같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세요. 누구의 책임일까요? 어른들이죠
그럼, 아이들은 무슨 일을 했나요? 글쎄, 안네 프랑크 (Anne
Frank) 는 홀로코스트 (Holocaust) 이야기로 몇 만명의 심금을 울렸고, 루비 브리지스 (Ruby Bridges) 는 미국의 인종차별의 종결을
도왔고, 가장 최근에 찰리 심슨 (Charlie Simpson)은
아이티 (Haiti) 기금을 위해 120,000 파운드를
작은 자전거로 모금했어요. 이러한 예를 증거로 볼 수 있듯이, 나이는
아무 상관이 없죠. 유치하다는 단어가 제시하는 특성은 어른들 사이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래서 우리는
나이를 차별하는 이 단어를 폐지해야 되요. 그것이 무책임하고 비논리적인 생각과 섞여져서 비난받을만한
행동으로 나타날 때는 말이에요.
성인들과 동료 TEDster 분들, 아이들에게서 듣고 배우고 우리를 믿고 우리에게 기대를 좀 더 할 필요가 있어요. 여러분은 귀담아 들으실 필요가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미래의 지도자들 이니까요, 그건 우리가 여러분들을 돌볼거라는 의미인데 여러분이 늙고 쇠잔했을때죠. 단지 농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차세대가 될 것이고, 이 세상을 진전시키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또, 만약 이것이 여러분께 의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를 대비하면,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과, 그것이 어린시절을 다시 거치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걸 기억하세요. 그 경우에는, 여러분이 나의 세대처럼 자기 의견이 들어지길 바랄 겁니다. 자, 세상은 새 지도자들과 새로운 아이디어들의 기회를 요구합니다. 아이들은 지도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회가 필요하죠. 그 결합을 할 준비가 되어 있으세요? 왜냐하면 세상의 문제들은 인간가족의 가보가 되어서는 안되니까요.
Joachim de Posada says, Don't eat the marshmallow yet
우리 나라에 "마시멜로 이야기"로 유명한 스토리, 이 이야기를 6분에 즐기실 수 있습니다. ^^
“왜? 어떻게? 무엇을? 이 작은 아이디어는 몇몇 단체 그리고 리더들이 왜 영감을 줄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
지구상의 모든 개인, 단체는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100% 말입니다. 몇몇은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죠.
(...)
하지만
아주 극소수의 사람 혹은 단체들은 자신이 ‘왜’ 그 일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 "왜" 라는 것은 즉: 무엇이 당신의 목적인지?
당신의 이유가 무엇인지, 당신의 신념이 무엇인지를 의미합니다. (...)
결과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소통하는 방식은 외부에서 부터 안쪽으로 향합니다. 명백합니다. 우리는 가장 명백한
것부터 시작해 가장 까다로운 것으로 향해 가죠. 하지만 영감을 주는 리더들 그리고 단체들은, 그들의 크기와 산업에 상관없이, 모두 생각하고,
행동하며, 소통합니다. 내부에서 부터 바깥쪽으로.“
사이먼
시넥은,
위대한
리더들이 행동을 이끌어내는 법에 대해 위와 같이 알려주었다.
이른바
Golden Circle! 이것이 그의 강연을 꿰뚫어보게 해 준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왜’ 라는 반짝이는 가장 작은 원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지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열쇠였던 것이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안 하고 운 좋게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모든 리더들은, 씩
웃으며 주머니에 그 열쇠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사람들은 임무(당신이 하는 일)를 구입하지 않습니다;
신념(당신이
하는 이유)을 구입합니다.“
사이먼
시넥이 애플사의 실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예로 든 뒤 위와
같은 말을 한 것은 강연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하지만
이 말과 함께, 완전히 압도당했다!
그리고
사이먼이 강연 내내 저 말을 반복할 때마다
확실하게
각인됐다. 신념의 중요성이..
내가
이제껏 애플 제품을 산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mp3 회사는 흔했고, 다른 좋은 제품도 많았지만, 난
굳이 컴퓨터전문회사인 애플사의 제품을 쭉 썼다. 그렇다고
내가 애플사의 신념에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강연을 본 뒤 알았다. 나에게
애플사의 mp3를 사도록 추천한 건 내 남편이었는데 남편이
‘애플사의 신념’을 늘 구매하고 있었다는 것을. ‘애플사의 제품을 사면 구매자까지도
혁신적인 creative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것이
바로 애플사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회사의 정확한 신념을 모르면서 구매했던 나는, ‘신념’이 가지는 파급효과 때문에 구매했던 것이다.
애플사의
물건을 구매하는 것만 놓고 본다면 나는,
사이먼 시넥이 말한 얼리어답터는 아니었지만, 얼리어답터에
속했던 남편의 모습만으로도 신념의
영향을 쉽게 받았다는 얘기!
무수한
얼리어답터들과 그 주변인들을 시작으로 단계를
거치면서 더 많이 판매하게 될 애플사의 ‘신념’이 지닌 어마어마한
규모를 떠올리면서 으스스 했다.
그리고
이 으스스함이 더 정확해진 것은 사이먼의
다음과 설명 때문이었다.
“만약 당신이 신념에 대하여 말한다면, 당신의
신념을 믿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신념을 동일하게 믿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혁신의
전파 법칙이라 불리는 것 때문이죠.“
즉,
사이먼이 말한 법칙에서 남편이
얼리어답터였다면, 나는 ‘초기 대다수’ 였을 것이다. 이런
파장의 힘은, 아마도,
‘혁신가-> 초기 수용자(early adopter) -> 초기 대다수(early majority)
->늦은 대다수 (late majority) -> 느린 수용자(laggard)‘를
(‘신념’이라는 단단한 손가락이 있다면,)
신념
손가락으로 도미노 하나를 건드려 놓은 것처럼 끝까지
거침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이먼의
강연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라이트
형제와 사무엘 피에르폰트 랭리의 사례를 비교분석한 내용이다.
성공
조건으로 여겨지던, ‘자본, 능력 있는 직원, 훌륭한 시장 상태’에서도 실패한
사무엘 피에르폰트 랭리- 그
모든 걸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단지
명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
사무엘은
결과적인 측면인 부와 명예만을 원했기 때문에 돈을
원하는 직원들만 끌어들였고, 그것은 결코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비행 기계로 세계의 흐름을 바꾸겠다는 신념을 가진 라이트 형제는
그런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끌어들여 보란 듯이 성공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책과 영상물로 이미 유명해진 ‘Secret'이 떠올랐다.
시크릿과
이 강연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시크릿의
기본도, 내가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된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무조건 긍정적으로 잘 될 거라고 신념을 가지는 것. 그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즉,
언제 어떻게 얼마나 내가 원하는 걸 갖게 되느냐에 대해 집중하게
되면 지금은 가지지 않았다는 부정적 생각에 치우쳐 모든 게 망가지니까, 내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행복감, 감사한 마음, 그리고
갖고 싶은 것을 이미 가진 듯이 상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사이먼
시넥이 말한 것들과 모두 일맥상통해서 신기했다. 결국
‘신념’을 통해서 자연스러워지는 것들이니까- 또,,
시크릿은 실제로 이뤄진다. 하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사이먼
시넥이 초반에 말한 내용도 마찬가지!
사이먼은
말했다.
모든
가정에 위배돼 보이는 것들을 어떤 이는 분명히 성취해 낸다고- 그것이
바로 시크릿과 연결되는 핵심적인 고리이다.
개인적으로,
시크릿을 보다 명확하게 도식화해서 쉽게 실천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사이먼 시넥의 이번 강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사이먼의 강연이 시크릿과 달리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다 가진 것처럼 보인 사람이 실패한 사례’와 ‘평범한 듯 보였지만 신념을 가진 사람이 성공한 사례’를 여러
가지로 명확하게 다뤄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성공의
열쇠를 가지게 된 것처럼 든든해졌다.
시크릿을
처음 접했던 나는, 들떴었다. 자기암시가
강한 편이어서 작은 시크릿은 쉽게 이뤄내기도 했다. 심지어
큰 시크릿도 성공해내곤 했는데..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자만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신념’의 순수성에서 멀어져갔다. 사이먼이
말하는 3번 영역 What.. 에만 집중했다. 가지고
싶은 것, 얻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에만- 그러자
실제로 시크릿은 일그러졌다. 절대 이뤄지지 않았다.
모든
것의 베이스는 ‘순수한 신념’에 있는 것인데 그걸
망각해서였구나- 하고, 사이먼의 강연을 통해 깨달았다. 사이먼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정신차리십시오! 당신은 큰 착각을 한 겁니다!
제대로
된 시크릿을 해서 성공하려면, ‘신념’을 절~대 버려선 안 됩니다!“ 라고..
처음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지만, 이내,
뒤통수를 쳐 준 게 너무 고마웠다.
눈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시크릿의
핵심이 ‘즐거운 마음, 감사하는 마음’ 인 것에도 이유가 있었던 거다. 바로
‘신념’. 신념을 가졌다면 절대 슬프거나 괴로울 수 없다. 감사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어른들이 가끔 말씀하시는 “돈은 즐겁게 열심히 일하면 저절로 따라와 붙는 거지돈만
따르면 절대 돈은 안 따라온다.“ 는 말도, 신념과
연결되자 소름 돋게 신기했다.)
결국,
이렇게,, 세상을 바꾸는 힘도 신념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돈,
시간, 명예, 인적자원이 모두 중요한 시대이지만, 그것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지붕이 되어 주는 것들이라면-
우리의
'신념', 즉 '왜' 와 관련된 모두의 믿음은 “기둥”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둥
없이, 지붕은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모두 갖췄지만 신념이 없었던 사람들은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기둥이 있다면, 지붕은 언제든 얹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라이트형제가 비행에 성공하고 스티브잡스가
애플사를 일으키고
마틴루터킹이
민권운동을 성공시킨 이유는, 이거다.
기둥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눈이 환해지고나자,, 보이기 시작했다. 나만
잘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을 때 오늘의
운세를 자꾸 클릭하거나 미신에 의존하게 되는 것도 바로,
‘신념의 부재’ 때문이었다는 게..
또,
여기서 하나 더 간과해선 안 될 게 있다고 판단했다. 그건
바로, 지붕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질투나 욕심이다. 이런
건 일찌감치 버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게
지금 필요한 건 지붕이 아니라 기둥이니까. 그리고
그 기둥은 어느 누구도
대신
만들어 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젊음의 대부분을 질투하는 것으로 소모하고 싶진 않다. 노인이
됐을 때, 젊은 나날의 소모적인 감정들을 후회하기보다는 젊은
나날의 확고했던 신념을 자랑스러워하고 싶다. 그래서..
Ted talk을 더 열심히 봐야 겠다. ㅋㅋ)
여튼..
사이먼
시넥이 자신의 사고방식을 바꾸게 했다는, 위대한
사람들의 패턴, 그 골든 써클의 핵심이 이젠
내 인생을 바꿀 것 같다. 시크릿을
처음 읽었을 때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진 강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강연을 몇 차례 곱씹어 생각하면서 하나 얻어낸 사고의 전환이 있었다.
“사람들은 왜 테드에 열광할까? Why?"
라는
의문을, 이 강연과 함께 깨끗하게 풀어낸 것이다.
테드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이 강연과 같이, 1번 핵심영역, 즉
신념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꾸준히 모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임의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feel이 통하니까.
그리고
그들이 느끼고 있는, 가슴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그 무엇' 만으로는, 사실,
모임의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처음 테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나도, 이윤
창출도 안 되는 모임에서 어떻게 저렇게 다들 열심일 수 있을까, 하는
유치한 오해도 했었고, 이상한
종교 단체 아니냐,는 의심도 했었다.
하지만
이 강연을 통해 한 걸음, 다가가게 됐다. 신념만
같다면 어떤 일이든 시작할 원동력은 충분히 마련된다는 걸. 그리고,
'종교 단체‘ 오해받았다는 건 그만큼
결속력이 강하고 유인력이 있으며 자발적인 단체라는 건데 그만큼
테드에 모인 사람들의 신념이 한 곳을 향해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실제로
신을 봐서 신을 믿는 게 아닌 것처럼, 그것이
종교의 신념이고 핵심인 것처럼, 그들의
보이지 않는 단단한 끈은, 한
곳을 바라보는 '신념'이다.
그렇기에
난, 이 사람들이 종국엔 뭔가 크게 해낼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중에는
1번->2번->3번 써클을 모두 완성해서 모두가
자연스럽게 많은 걸 거머쥐게 될 것 같으니까.
이제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 how나, what에 앞서서, why에 집중할 준비를-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는지가 명백하다면 그
순간 다른 건 필요 없다.
이
강연을 통해,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신념이
있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는가. 당신이
못 해낼 건 없다. 왜
움직이지 않는가.
Why! 라고..
나
역시, 리뷰를 다 쓰고 나면, 나만의
골든 써클을 그려볼 생각이다. 특히,
아무도 그려줄 수 없는 1번 원부터 뚜렷하게, 그려야겠다. 그리고
항상 머리에, 마음에 새겨두려 한다.
why. why. why.
왜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일에서 왜 행복을 느끼는지, 그리고,
왜 서둘러서는 안 되는지!
(실제로, 참을성을 갖고 모든 단계를 기다리는 것도
성공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판단이 들었으니까..)
다른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사이먼 시넥의 골든 써클을 그려보자!
1번부터!
1, 2, 3의 골든 서클을 그렸는가?
그렸다면
이제 할 일은 한 가지다.
끝까지
하는 것!
성공한
사람들도 신념을 통해 1~3의 단계를 거쳐 성공한 것이지 아무런
결과물 없이 앉아서 생각만으로 성공한 건 아닐 테니까.
“제 생각엔 우리들이 만들어왔던 가장 큰 역경은 정상 이라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 자, 그럼 누가 정상이죠? 정상적인 것은 없어요. 보통이라거나 전형적인 것은 있어도 정상적인 것은 없습니다.”
“진정한 장애는 억눌린 마음입니다. 억눌려서 아무 희망도 없는 마음이죠.”
"모든 아이들이 신을 알고 있다네, 혼내지도 않고 하지 말란 얘기도 없고 오로지 네 개의 단어만 알고 계속해서 반복하네. Come dance with me - 이리 와서 나랑 춤추자.”
위의 문장들은, 에이미 멀린스의 강연을 보면서 내 마음을 가장 크게 헤집고 지나간 말들이다. 강연을 보는 내내, 반성과 감동과 존경의 마음이 교차했고, 끝내 눈물이 맺혔는데, 그 순간, 눈물이 맺힌 것까지도 반성하게 한 강연이었다. 어찌 보면 그 눈물도,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장애를 염두에 두고 흘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몹시 부끄러웠던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이 강연을 듣고 알았다. 나 역시 철저하게 편견에 갇혀 살아온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진짜 장애를 가진 사람은 마음이 병든 사람이고 편견을 가진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캠페인처럼 한 때 유행인 적도 있었는데, 이 강연을 보고 나니, 그 역시 ‘장애’라는 개념에 대한 편견에 휩싸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류가 만든 가장 큰 역경이라는 에이미의 말이 뇌를 흔들었다.
<강연을 통해 내가 새롭게 선물 받은 생각의 기회들>
이 강연을 보고, ‘말의 힘’에 대해 다시금 고찰할 기회를 선물 받았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보면, 말 한 마디, 단어 한 개의 의미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긍정적 단어를 붙여 놓은 물은 생명수가 되고 긍정적 단어를 붙여놓은 밥은 향기가 좋게 발효가 되지만, 부정적 단어를 붙인 물과 밥은 시간이 흐르면 썩는다. 우리 몸도 단어 하나에도 쉽게 반응한다. 70% 이상이 물로 이뤄진 개체니까- 그래서 누군가를 욕하면 가장 크게 해쳐지는 건 내 몸이다.
에이미 멀린스가 ‘장애’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언급한 것도 이런 내용들과 일맥상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 번 인식된 단어의 부정적인 의미, 늘 말하면서 사는 단어의 부정적인 의미들이 우리의 상상을 가로막고, 편견을 심화시키고, 진정한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강연의 후반에서 예로 든 실험 역시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그런 실험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우리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억누르는 부정적인 사고방식, 죄책감, 편견, 이런 모든 사고들이 나의 언어를 결정짓고, 끝내는 삶 전체를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그렇기에, 긍정적 자기 암시가 우리의 삶 전체를 바꾼다는 많은 사람들의 주장은 더 명확해지는 것 같다. 가장 먼저 바꿔야 하는 건 단순해보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사고의 전환, 이다. 이게 가능해진다면 이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파라다이스를 만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또, 이 강연 중에서, ‘역경은 단지 변화의 일부’라는 에이미의 말을 통해, 나 자신과 내 꿈들, 타인과 타인의 꿈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기회를 선물 받았다.
언제나 막연하게, ‘성공한 사람들을 키운 것은 끊임없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도전한 것이다.’ 라고 생각만 했지, 내가 겪는 역경이 삶의 일부이며, 길게 본다면 성공을 위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현실적으로 굳게 믿으면서 즐겁게 생각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또 중요한 건, 에이미의 다음 말이었다. 역경을 마주할 것이냐 아니냐의 여부보다도 ‘어떻게’ 마주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그 말. 어떤 역경에 맞서야 하는 나 자신도, 또 모든 역경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모든 타인들도, 온전한 인격체이며 무수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에이미와 같은 시각에서 사람 그 자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닌 모든 결함 속에 숨어 있는 창조적인 능력들이.. 그 가능성이-
그래서 누군가의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로 결심하게 됐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 내가 너무 늦게 꿈꾸는 게 아닌가에 대한 의심조차 버리기로 했다. (I love you, Aimee~)
끝으로, 내가 얻은 선물은, 어쩌면 이번 강연을 통해 받은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딸아이가 더 크기 전에, 내가 딸을 키워나갈 마음가짐과 관련된 사고방식을 더 긍정적으로 수정할 기회를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강연의 말미에서 그녀가 소개한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Hafiz의 시, <네 개의 단어만 아는 신>은, 에이미의 모든 생각을 담고 있는 정말 아름다운 시라고 생각했다.
"모든 아이들이 신을 알고 있다네, 혼내지도 않고 하지 말란 얘기도 없고,
오로지 네 개의 단어만 알고 계속해서 반복하네.
Come dance with me - 이리 와서 나랑 춤추자.”
네 살 난 딸아이를 기르면서, 물론 사랑한다는 말도, 스킨십도, 칭찬도 많이 해주긴 했지만, 알게 모르게 꽤 많은 시간을, 내 기준으로 호되게 혼내거나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며 지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미안하기도 했다. 딸이 가지고 있는 - 어쩌면 우주를 담을 수 있을 만큼 무궁무진할 수 있는 - 잠재력을 내 기준에서만 바라보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했다. 사실 많은 부모들이 저지르는 실수이기도 할 거다.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히 알았다. 내 뱃속으로 낳은 딸이지만, 그 아이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생각해야 더 제대로 키울 수 있다는 걸. 다만, 끊임없이 사랑해줘야겠다는 걸. 그리고 딸에게 진심을 담아 시에서처럼 말할 수 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리 와서 나랑 춤추자- 라고.
이 세상을, 치열한 곳이라고 일러주기에 앞서, 즐거운 곳임을 보여줄 수 있어야겠다고- 즐거운 곳이라는 걸 뼛속부터 느끼고 인식해 나가게 되면, 아이가 역경이라고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그냥 변화의 일부로 느끼고 ‘행복’의 감정을 영원히 가지고 살아갈 테니까- 그리고 모든 사람은 너와 똑같이 소중하고 모든 걸 해낼 수 있다는 걸 말해줘야겠다. 그 역시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며 큰다면, 성인이 됐을 때 사람과 사물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게 될 테니까-